2008년 2월 2일

2008년 2월 3일 공과


예배를 통해 발견한 예수님

- 생뚱맞은 예수님, 나의 속사람을 너무 잘 아세요. -


(본문) 요 4:16~26


되짚어보기.

지난 시간에 배웠던 예배에 대해서 아직도 기억하나요?

1)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궁금했던 것은?

2) 어떤 사람이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3)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Q1.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드리는 예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22절)

- 유대인은 아는 것을 예배하고, 사마리아인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Q2.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하는 물을 요청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제일 먼저 하셨나요? (16절)

- 내 남편을 불러오라


여기서 잠깐, 예수님의 생뚱맞은 대화법을 살펴볼까요?

12절 (사)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4절 (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15절 (사) 그 물 좀 주세요.

16절 (예) 네 남편을 불러오라.




Q3. 예수님은 왜 여인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을까요?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 보세요.
또 예수님은 어떤 분인 것 같아요?

- 예수님은 남자만 편애해서 남자한테만 그 물을 준다?

- 진짜 남편이 없는지 확인하려고 그랬다?

- 사실은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을 줄 수 없으니까 남편을 부르러 간 사이에 도망가려고 그랬다?

- 그 여인의 죄를 밝히 알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 여인이 평소에 궁금했던 죄 사함이 있는 진정한 예배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여인은 자신의 고민에 대해 한마디도 예수님께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여인이 고민하던 죄 문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예배에 대한 문제를 하나씩 짚어 나간다. 예수님은 우리 겉모습 뿐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아신다.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을 잘 알아야만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Q1에서 얘기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는 사마라아인들의 예배가 아닌 예배의 대상을 잘 알고 드리는 유대인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나누기.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 고민들을 이미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죄책감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해결되지 않는 고민 때문에 답답했던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예배를 통해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 그 문제를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요?




2007년 1월 31일

전 아버지를 닮았나 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신기하게도 '난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나봐'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만 1년이 됩니다.
공사장에서의 사고로 병원에 계속 누워계시다가 폐가 나빠져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누군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을 한다면 "아빠가 좋아!"라고 얘기할 것 같습니다.
늘 잘못을 꾸짖는 어머니보다 항상 인간적인 모습의 아버지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많은 친구분들이 저에게 했던 얘기가 기억납니다.
'너희 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셨어', '정말 유쾌한 분이셨지', '아마 너희 아버지를 싫어했던 사람은 없었을거야'...
특히 저에게는 "유쾌한 분"이라는 표현이 너무 기억에 남고 좋습니다.
저또한 아버지의 유쾌함을 닮고 싶어서겠지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를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신 분이 있었는데 바로 저희 어머니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 집의 가정 형편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공사장 인부로 일을 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게 항상 생활을 위협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일거리가 있을 때는 그런대로 생활이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장마철이나 한 겨울 공사 일이 없을 때는 늘 경제적으로 편안하지 못했답니다.
그러다보니 제 나이 절반 이상의 세월을 집이 아닌 해외에서 혹은 타지에서 보내셨습니다.(제가 올해 29 입니다^^)

그리 넉넉하지 못하고 가끔은 쪼들리며 생활을 해야하셨지만 사람들 앞에선 항상 웃고 재미난 얘기를 잘 하시곤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겐 그런 아버지가 못 마땅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경제적으로 무능하게 보이셨던 모양입니다.
늘 두 분이 싸우시던 일의 대부분이 돈 문제였으니까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정말 멋진 분이라고 할 만한데 어머니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쉽게 짜증도 내시고 잔소리도 하시고 저와 저희 누나의 문제도 항상 어머니에게 화를 내시는 것으로 대신하셨답니다.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두에 표현했던 것처럼 잠시의 기억만으로도 저는 아버지와 많은 닮은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친구가 5월쯤에 결혼을 한다고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 남자친구와 많이 다툰다며 남자가 이해심이 많이 적은 것 같다는 얘기가 기억납니다.
그런 친구에게 저도 속 좁고, 그것 때문에 아내와 많이 다툰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 남자가 저 만큼만 되어도 좋겠답니다. ^^;
하지만 그 친구는 제 아내와 저의 관계 속에 있는 제 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처럼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해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아내에게는 참 모질게 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다투고 화도 많이 냈습니다. 가끔은 아내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답니다.
작은 일에 불평하고 짜증내고 무슨 일에든 저는 맞고 아내는 틀렸다는 식이죠.(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새벽녘에 눈을 뜨고 아버지와 나는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어느덧 제 아내를 향한 미안함으로 변합니다.
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청년들을 인도하기도 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해주라고 그렇게 외쳤는데 저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제 아내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편지를 쓸지 맛있는 빵을 사줄지 모르겠지만 그간의 나의 못난 모습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또 한번 저에게 교훈을 남기십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지금까지도 곁에서 저를 꾸짖어 주셔서 빗나가지 않도록 이끌어 주신 어머니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의 사랑하는 아내 으니씨, 미안합니다.(이름을 제대로 부르려니 부끄럽네요^^)
사랑합니다.

2007년 1월 26일

내 도메인 가치 알아보기

SIRINI.NET을 통해 도메인 가치를 알아보는 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사이트 주소는
http://www.names.co.kr/service/dna.html입니다.

인터넷에는 재미있는 곳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제 도메인의 가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네임즈-도메인 가치 평가 서비스
제 블로그엔 구글 애드센스가 있습니다.

아침에 우연찮게 구글 애드센스에 관한 글을 읽다가 글을 남깁니다.
이 블로그에도 구글 애드센스가 입점(?)한지 두달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포스트되는 글이 얼마 없어서 수익이 그렇게 생기지는 않습니다.

애드센스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블로그 내에 광고 삽입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 블로그에 애드센스를 연결하면서 가끔이지만 글을 읽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를 생각 못한 제가 참 못났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잠시였지만 관련된 글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이 글을 남깁니다.

핸드폰 이야기
어제 새로 산 휴대폰(MS500 모토로라 레이저)을 만지면서 이 놈을 가지고 할 일이 없을까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시도한 것이
NateAir에 가입하는 것이었습니다.
NateAir라는 것이 몇 가지 주제를 가진 채널에 가입하면 관련 내용을 문자메시지(?) 형식으로 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나름대로 재미 있을거란 생각에 가입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했는지 싶습니다.(오늘 중으로 다시 해지할렵니다.)
어쨌든 뉴스 채널에 가입을 해서 정보를 받아 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내용은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었습니다만)
뉴스의 하단에 "자세히 보기"와 같은 메뉴가 있는데 무의식 중에 그걸 누르게 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얼른 연결을 끊는 동작을 취하지만 그래도 그런식의 연결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광고가 광고다워야 광고지~
애드센스를 얘기하다가 많이 돌아온 것 같은데 블로그 내의 광고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꺼내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블로그 내에 광고를 삽입하는 것을 찬성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광고 방식이 기본을 지키는 광고였으면 한다는 것이 덧붙여 드는 생각입니다.

위의 핸드폰 얘기에서처럼 블로그 방문자가 광고인지도 모르게 클릭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광고라는 특성상 어쩌면 모순이 되는 표현일 수 있지만 방문자가 광고를 광고로서 인지한 뒤에 필요할 때 클릭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관심있는 주제의 블로그에서 좋은 글을 읽는 중에 블로그 자체의 내용으로 알고 클릭했는데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는 광고였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지뢰밭처럼 광고로 도배되어 있어 어디 한번 잘못 눌렀더니 다른 광고성 사이트로 이동하는 것 또한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블로그 본연의 목적이 블로거의 관심 주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면 기본적으로 원하는 글을 선택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광고가 있어도 되느냐 없어야 되느냐보다 방문자의 실수가 아닌 선택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광고가 광고로서 인지되고 그것이 필요할 때 클릭한다면 충분히 광고을 삽입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은 광고 자체가 하나의 정보로서 다가 올 때도 있기 때문에 활용만 잘 한다면 그 존재 여부의 필요성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 블로그엔 광고가 쭈욱~ 이어집니다.
글을 쓰다보니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광고를 삽입하는 것 자체가 수익을 위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해야하는 아주 당연한 일들을 부정했는데 엄청난 모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 또한 어떻게하면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떤 글을 남겨야 사람들이 광고를 한번씩 클릭해줄까?'
지금의 결론은 광고에서 얼마를 벌었냐가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쭈욱~ 저만의 생각을 꾸준히 남기자입니다.
(기라성같은 블로거들처럼 광고 수익이 있거나 의미있고 좋은 글을 남기지 못하는데 너무 거창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좋은 글에 사람들은 반응하고 관심을 가져 주지않까요?
특정한 분야의 전문 지식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일관된 생각과 가치관을 알리는 것도 좋은 글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제 글에 찬성하고 그 글을 좋아해주면 동정표로 광고 한번 클릭해주지 않을까요? ^^;

2005년 6월 27일

글 : 김 형 경
소설가
<성공하는> 74기 이수

내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읽은 것은 그 책이 첫 출간되었을 때였다. 당시 삼십년 이상 살면서 예술가로 운명지워지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들이 유난히 현실 감각이 둔하며, 바로 그 희박한 현실 감각 위에서 상상력과 재능이 발현되기는 하지만, 또한 그 결여된 현실감 때문에 더 자주 불행한 일에 휘말리고 때로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나 또한 그런 부류에서 조금치도 벗어나지 않은 예술가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책을 통해 만났던 7Habits
서점에서 그 책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물론 성공하고 싶었다. 무엇을 성취하고, 어떤 자리에 오르고, 재물을 쌓고…… 하는 종류의 성공 말고, 그냥 내 삶 자체에 대해 성공하고 싶었다. 큰 과오나 고통 없이, 평화롭고 충만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삶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른 신화가 존재했다. 훌륭한 예술은 고통과 광기와 궁핍 속에서 탄생하며, 예술가가 배부르고 편안한 순간 그 예술은 썩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그 간극을 내면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예술에 대한 그런 편견은 봉건사회에서나 통용될 뿐,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생 감정의 좌충우돌이나 겪고, 궁핍하고 불행한 생을 살아야 하는 조건이라면 기꺼이 예술을 포기할 의도까지 있었다.
이제는 많이 흐릿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펼쳐들었던 그 책은 내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중 가장 경탄했던 점은 성공한 사람들을 무수히 면담하여 그들의 자질이나 생의 방식에서 본받을 만한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일곱 가지로 요약하여 설득력 있게 제시한 스티븐 코비의 저술 능력이었다. 당시 나는 십년 가까이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삶의 노선을 변경한 직후 약간의 갈등을 겪고 있던 때여서 ‘당신의 삶을 주도하라’는 첫 습관부터 배울 점이 많았다. 물론 나머지 여섯 가지 습관도 당시의 내게는 소중한 지침이었고, 적절한 시기에 좋은 책을 만난 것에 감사했다. 그 책 덕분인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예술가의 딜레마’를 나름대로 잘 헤쳐나가는 중이다.
바로 그 책을 쓴 스티븐 코비 박사가 그 책 내용을 토대로 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그 중 하나가 ‘성공하는 리더들의 7가지 습관 CEO과정’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도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최근이었다. 작년 연말에 어떤 자리에서 한국리더십센터 고현숙 부사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고 부사장으로부터 그런 정보를 들었다. 그 정보를 들었을 때 예전에 그 책에서 받았던 감동이 떠올라 좀 아는 척을 했을 것이다. 그런 내게 고 부사장이 “그렇다면 한 번 워크숍에 참가해보겠느냐”고 제안했다. 예술가와 리더십은 어떤 관계도 없고, 소설과 CEO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지만 나는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그러마고 했다. 예전에 그 책에서 받은 감동도 기억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쇄신하라’는 습관도 잊지 않고 있었고, ‘소설가에게는 모든 경험이 자산이다’라는 논리도 있었기 때문이다.

워크숍을 통해 만난 7Habits
워크숍에 참가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사실 원주 오크밸리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저 봄나들이 가는 마음에, 막연하게 유익하기는 할 거라는 기대밖에 없었다. 워크숍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 3일간의 워크숍 코스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결 하드하고, 프로페셔널하고, 유익했다. 3일 중 절반은 박창규 선생님으로부터, 나머지 절반은 김경섭 선생님으로부터 워크숍을 받았는데, 그 과정이 끝나고나자 내 삶에서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느꼈던 점들이 더 선명히 보였다. 창작은 본질적으로 혼자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게는 습관 4, 5, 6과 같이 타인과 공동으로 일을 도모하는 방식에서 소홀한 점이 많았다. 삶의 전반에서 취약한 지점을 명확히 알게 되었고, 그것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손에 넣었다는 점이 가장 유익했을 것이다.
고 부사장을 만나 적절한 정보를 들었던 것처럼, 가끔 생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나 법칙이 존재한다고 명백히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워크숍이 끝나고 오크 밸리에서 나오는 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그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모 신문에서 독자들의 고민에 대해 상담해주는 지면을 꾸몄는데 거기 필자를 해달라는 청탁 전화였다. 최근에 내가 인간의 심리에 대해 많이 공부해서 소설이나 수필에 그런 내용이 담기곤 했기 때문에 그런대로 적합한 필자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2년 전에도 다른 신문으로부터 똑같은 아이템으로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일이 있는데 그때는 분명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판단이 서서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똑같은 일에 대해 “이제는 해야 하는 일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숍에 참가하는 동안 삶의 방식에 대한 조정 작업이 있었고, 미미하게나마 심정적인 변화를 겪은 후였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또 하나의 행운, 코칭
담당 기자를 만나 지면에 대해 의논한 후 구체적인 집필 방법을 생각을 하고 있던 무렵 다시 고현숙 부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워크숍 참가 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고 부사장이 뜻밖에도 코칭 코스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까지 나는 코칭에 대한 개념은커녕 코칭이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다음에는 한번 코칭 코스에 참가해 보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저것이구나”하는 것을 반사적으로 알아차렸다. 당시 고민하던 상담 원고 집필 방법에 가장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거기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코칭 코스는 지난 5월에 받았다. 코칭 코스에 참가해서야 코칭이 컨설턴팅, 카운슬링, 멘토링, 세라피와 각각 어떻게 다른지를 알았고, 코칭이라는 직업이 현대인의 심리 중 어떤 지점에 어필하는가도 짐작하게 되었다. 코칭 코스는 특히 일곱 가지 습관 중 다섯 번째인 ‘먼저 이해하고 다음에 이해시켜라’의 실천 덕목에 해당하는 과정이어서 조직에서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나 능률 향상에 유익할 것 같았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일상적 대화 방식으로 코칭 대화 모델을 채택하면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코칭을 하는 유익한 기능을 하게 될 것 같았다. 물론 상담 원고를 쓸 때 필요한 기술적 측면에서도 구체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질문 글을 읽을 때는 ‘맥락적 경청’을 해야 하며, 눈에 보이는 여러 문제점 중에서 시급하고 중요한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는 ‘포커싱’을 잘 해야 하며, 직접 대화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메시징 스킬’ 기법으로 원고를 쓰되, 가끔 ‘발견 질문’도 제시해야 한다는 것.
우연과 우연이 만나 리더십 워크숍과 코칭 코스를 참가하게 되었지만 그 두 번의 경험은 내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받은 경험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도 그런 행운이 찾아와준 것에 대해 많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